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어 방 (문단 편집) === 윌리엄 래퍼포트: 한국어 방 논변 === 레퍼포트가 1988년 중국어 방 논변을 확장하여 제시한 논변. >서울에 사는 한 [[영문학과]] 교수는 [[셰익스피어]]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다. 그는 영어를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. 하지만 그는 한국어로 번역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었으며, 이에 대한 논문을 썼다. 이 논문들은 영어로 번역되어 저명한 학술지에 실려 인정을 받았다. 이 교수는 원문 셰익스피어를 본 적이 없지만 셰익스피어를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. 한국 교수가 셰익스피어를 이해하였듯이 중국어 방 사람도 중국어를 이해했다고 봐야 한다. 한국인 교수는 당연히 한국어라는 언어를 명확히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 만큼 얼핏 보면 이 논변은 중국어 방 문제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 없는 말장난처럼 보인다. 그러나 이 논변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앞 문단들에서 지적된 것처럼 중국어 방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[[통사론]](구문론)과 [[의미론]]의 문제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. 만약 이 교수에게 영문 원문으로 된 <햄릿>을 던져준다면 그는 그 희곡을 전혀 읽을 수 없을 것이다. 하지만 거기에 무엇이 쓰여있는지,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수 있을 것이다. 즉, 그는 통사론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의미론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. 상기된 중국어 방 논변을 둘러싼 논쟁들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, [[존 설]]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'통사론과 의미론을 함께 가져야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'는 것이다. 그리고 윌리엄 레퍼포트는 한국어 방 논변을 통하여 둘 중 하나만 가지고서도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을 제시한 것이다. 다만 앞서 언급한 한국어라는 언어를 이미 이해하고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존 설이 제시한 중국어 방 문제와는 많이 엇나갔다고도 볼 수 있다. 엇나감의 원인은 존 설은 '기계적 선택'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래퍼포트는 '해석체인 사람'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. 한국어로 번역된 셰익스피어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명제적으로는 영어로 쓰인 원문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봐야한다.[* [[콰인]]의 가바가이-토끼 사례만 생각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.] 따라서 셰익스피어 원문이 영어로 쓰였다고 해서 그것이 영어일때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. 심지어 한국어 방의 조건을 더욱 더 악화시켜서, 서울에 사는 한 평범한 남성이고, 셰익스피어 원문과 영한사전을 던져주고 이에 대한 논문을 쓰게 한다고 한들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